한국은행 본관은 일본의 「도쿄역」과 「일본은행 본점」을 설계한 일본인 건축가 「다츠노 깅고(辰野金吾)」가 설계한 것으로 1907년 착공되어 1912년 준공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때 내부가 불타 버린 것을 1958년 복구하였고, 1987년 신관을 세우면서 1989년 현재 모습으로 복원하였으며, 2001년 내부를 개조 화폐금융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Read more.
이 건물은 구한말 조선정부의 서양의학 도입노력의 일환으로 1908년에 세워진 대한의원 본관 건물입니다. 현재 사적 제24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울대학교병원 의학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박물관 이용시간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오후 12시에서 오후 2시 사이는 점심시간)이며, 토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2시까지입니다. Read more.
현재는 중구청 건물로 사용하고 있는 이 건물은 1933년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건축물로 많은 공공기관 건물들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모더니즘 양식의 건물이다. 인천부청사가 있던 이 곳은 구한말 개항기에 일본인 조차구역의 핵심적인 위치로 정면에 인천항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래는 일본영사관이 있었던 곳이다. Read more.
이 교회는 1906년 영국인 주교 조마가 (Mark N. Trollope)가 지은 성당 건물로 우리나라의 초기 서양 기독교 교회양식의 건물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기법을 활용하여 종교적인 성당건축 방법과 공간 구성을 확립한 동서 절충식 강당형의 목조건물이다. Read more.
조선성공회 3대주교인 마크 트롤로프 주교가 1922년 영국인 아더 딕슨의 설계대로 착공하여 1926년 5월 2일에 헌당식을 가진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이다. 일제강점기 건축되어 당초의 '큰 십자가 형'이 아닌 '작은 일자형'으로 축소되었으나, 1993년 원래의 설계도를 영국의 한 도서관에서 찾게 되어 본래 모습대로 1996년에 완공하였다. Read more.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 백범 김구 선생이 1945년 국내에 돌아와 임시정부의 집무실 겸 숙고로 사용한 곳이다. 환국 이후 임시정부 국무회의가 이곳에서 열렸고 신탁통치반대운동과 남북협상 등도 이 경교장에서 결정, 추진하였다. 김구 선생은 1949년 6월26일 이 건물 2층에서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서거하였다. Read more.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건물은 1928년에 세워졌으며 건물이 세워진 위치는 본래 조선 말 개화기 때에 평리원(平理院: 한성재판소)이 있던 곳이다. 세워진 후에는 경성재판소 건물로 사용되었으며, 해방 후에는 대한민국 대법원 건물로 사용하였고, 1995년 대법원이 서초구 서초동으로 이전한 뒤 리모델링을 거쳐 2002년 5월 본관으로 개관하였다. Read more.
대한제국 순종 융희 2년(1908)에 건립된 이 건물은 본래 기계시험소가 있던 터에 1906년 공업전습소가 생김에 따라 그 본관으로 지은 것이다. 광복 후 국립공업시험원 본관이 되었고, 지금은 한국방송통신대학 별관으로 쓰이고 있다. 구한말 탁지부가 설계한 몇 안되는 현존건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Read more.
신세계 백화점 본관은 1930년 일본 미쓰이 재벌의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지점 건물로 지어졌다. 해방 뒤 미군 피엑스로 사용되다가 1955년 동화백화점이 됐다. 1963년 삼성으로 넘어가면서 신세계 백화점으로 바뀌었으며, 1964년 이 건물에서 동양텔레비전방송이 개국했다. - <한겨레> ‘77살 백화점’ 옛모습 살렸네 (링크있음) Read more.
명동예술극장은 '옛 명동 국립극장'으로 쓰였던 건물을 복원하여 새롭게 탄생한 연극 전문 공연장으로, 이 공간은 원래 1934년 일본이 영화 전용관으로 건립한 바로크 양식 건축의 명치좌 였으며, 해방후 시공관을 거쳐서 국립극장으로 사용하다가, 그 후 오랫동안 금융기관 영업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Read more.
1926년 경성부청(京城府廳)으로 건립되었다가, 광복 후 서울시청 건물로 쓰이게 되었다. 이 건물은 6차례 증축되었다. 본관은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52호 (2003년 6월 30일 지정)이며, 1962년 증축된 북관과 1986년 증축된 신관은 새로운 청사(廳舍)를 짓기 위해 2006년초에 철거되었다. Read more.
고종 27년(1890)에 지은 르네상스풍의 2층 벽돌 건물이다. 한국전쟁으로 건물이 심하게 파괴되어 탑과 지하2층만이 남아있었으나, 1973년에 복구되었다. 한쪽에 탑을 세웠으며, 정문은 개선문 양식이다. 일본군에 의한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1896년 2월부터 1897년 2월까지 고종이 세자와 함께 피신하여 있던 곳이다. Read more.
1930년대 조선총독부에서 세운 부민관 건물로 해방 직후 미군이 사용하다가 1949년 서울특별시가 소유하게 되었으며, 1950년 1월 국회의사당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1975년 9월 1일 국회의사당이 여의도로 옮긴 뒤 시민회관이 되었고, 1976년 세종문화회관이 세워지면서 그 별관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1991년부터 서울특별시의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Read more.
옛 용산신학교의 부속성당인 원효로성당은 1902년에 세워졌으며, 프랑스인 코스트 신부가 설계·감독 했다. 원효로성당은 언덕을 이용하여 지었기 때문에, 남쪽 언덕 아래는 3층이고 수녀원쪽은 2층이 된다. 주로 이용하는 출입구가 중앙이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쳐있어 비대칭의 모습을 이루었다. Read more.
이 곳은 1907년 일제가 애국지사들을 투옥하기 위하여 만든 곳이다. 이곳의 처음 이름은 경성감옥이었는데,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 경성형무소,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67년 서울구치소가 되었다. 1987년 서울구치소를 경기도 의왕시로 옮기고 1998년 11월 5일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개관했다. Read more.
이 건물은 고려대학교의 모체가 되는 보성전문학교의 개교 30주년이 되는 해인 1935년에 착공하여 1937년 9월에 준공한 지상5층 규모의 석조 및 철근 콘크리트로 된 도서관 건물이다. 건축의 양식과 주조는 한국인 설계자 박동진이 학교 경영주인 인촌 김성수와 상의하여 당시 교수로 있던 오천석의 모교인 미국 듀크 대학의 도서관을 참고하였다고 한다. Read more.
사적 제281호(1981년 9월 25일)로 지정된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고려대학교 설립자이자, 동아일보 사주였던 인촌 김성수가 세운 고등학교 건물로 1934년에 건축가 박동진이 설계하여 세운 석조 2층건물이다. 같은 설계자가 건축한 고려대학교 본관 건물과 거의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석조 건축물로 1937년 9월 26일 준공되었다. Read more.
일본 나가사키에 본점을 둔 18은행이 1890년 해외에 세운 최초의 지점이다. 이 후 1936년 조선식산은행 인천지점에 그 업무를 인계하였으며, 1954년 상공은행과 신탁은행의 합병으로 발족한 한국흥업은행 지점으로도 사용되었다. Read more.
인천에 있던 외국인들의 사교모임인 제물포 구락부의 사교장으로 쓰기 위해 광무 5년(1901)에 지은 것이다. 1913년 일본제국 재향군인회 인천연합회 소속의 정방각으로 불리다가, 1943년 일본부인회관으로 사용하였다. 광복 이후로도 정치 변화에 따라 여러 용도로 쓰였는데, 1990년부터는 인천문화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Read more.
1889년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 벨렘신부가 초대 본당 신부로 부임하면서 답동 언덕에 성당의 정초식을 갖고, 이후 코스트신부의 설계로 1897년 고딕양식의 건물을 세웠다. 현재의 건물은 1937년 기존 건물의 외곽을 벽돌로 쌓아올리는 개축공사를 완공하면서 로마네스크양식으로 변형된 것이다. Read more.
인주면 공세리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천주교 성당이다. 130여 평 규모에 본당·사제당·피정의 집·회합실 등의 건물이 있고 병인박해 때 순교한 3인의 묘가 조성되어 있다. 1894년 교회를 설립하였고, 1897년에 사제관을 세웠으며, 1922년 연와조 고딕양식의 근대식성당을 완성하였다. Read more.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옛 서울산업대학교) 교정에 있는 근대 건축물인 "공릉동 구 서울공과대학'이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에 지어진 'ㅁ'자형 건물로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건물이었다. 대한민국 등록문화제 제12호(2002.5.31)로 지정되었다. Read more.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옛 서울산업대) 캠퍼스에서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이 건물은 일제감점기시절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본관 건물로 만들어진 'ㅁ'자형 건물로 옛 서울공대 광산학과 교사이다. 대한민국 등록문화제 제12호(2002.5.31) 지정되었다. Read more.
공주 중동성당 건물은 1934년에 착공하여 1936년에 완공하였으며, 현재는 본당과 사제관이 남아 있다. 천주교가 서해안을 통하여 충청도 내륙에 들어오면서 현대식 성당 건축이 만들어지는데 이 성당은 그 중 하나로 단아하면서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Read more.
독일 건축가인 H.Weber가 1938년 건립하여 예배당으로 이용하였으며, 해안 절벽 위 송림속에 우아하게 자리한 모습에서 "화진포의 성"으로 불리워졌으며, 1948년 이후에는 북한이 귀빈 휴양소로 운영하였고, 당시 김일성과 그의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이 묵고간 적이 있어 지금까지 "김일성 별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Read more.
1920년대에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되어 사용된 건물로써 해방이후 북한 공산당의 간부휴양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휴전 이후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씨의 부인 박마리아의 개인별장으로 사용하였다고 하며, 1999년 7월 역사안보전시관으로 개수하여 관람객에게 공개되고 있는 건물이다. Read more.
운현궁 양관은 흥선대원군의 손자 이준용의 저택으로 일제가 한일합방 이전인 1907년도에 지어준 건물이라한다. 원래 이 곳은 흥선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의 뒤뜰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 건물은 그후 의친왕의 차남인 이우의 소유가 되었다가 해방후인 1946년부터 덕성학원에서 소유하게 되어 현재는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사용하고 있다. Read more.
1926년 11월 11일 진해선 개통으로 영업을 개시한 진해역은 2005년 9월 14일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192호로 지정되었다. Read more.
함석지붕으로 된 석조건물인 대학원관은 1935년 5월 완공되었다. 원래는 지상 3층이었으나 1948년 4층으로 증축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미국 남감리회 부인 선교부 총부 사라 에스터 케이스 여사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건물로 봉헌하며 케이스홀로 명명 음대에서 사용했다. 현재는 학술원 전용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출처: 이화여대> Read more.
정동 이화여고 심슨기념관(貞洞 梨花女高 Simpson紀念館)는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1915년에 준공된 옛 이화학당의 교사(校舍)이며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3호이다. 현재 이화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Read more.
구 대구사범학교 본관 및 강당(舊 大邱師範學校 本館 및 講堂)는 일제강점기 교원 양성을 위해 1923년에 설립된 경북도립사범학교의 본관 및 강당으로 대구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5호이다. 현재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로 사용되고 있다. Read more.
전남도청 본관(全南道廳 本館)은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로, 1930년 12월 5일에 완공되었으며 지방출신 건축가 김순하에 의해 설계되었다. 2002년 5월 31일 등록문화재(근대문화유산) 제16호로 지정되었다. Read more.
충청남도청은 본래 현재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자리에 설립되었다가 1932년에 대전으로 이전한 것이다. 당초 2층으로 준공되었던 것을 1960년경 넓은 창을 낸 모임지붕 형태로 3층 부분을 증축하였다. 2002년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6.25 사변 때에 임시로 육군본부로 사용되기도 했다. Read more.
옛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으로 고종 광무 3년(1899)에 지은 석조건물이다. 일본인 니이노이에 다카마사가 설계한 건물로 모래, 자갈, 석회를 제외한 나머지의 모든 건축 재료를 일본에서 직접 가져와 만들었다. Read more.
공화춘은 1905년 22세의 청나라 청년인 우희광이 청나라 조계지에 개업한 '산동회관(山東會館)'이 시초이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 건립되는데, 공화국 원년(元年, 1912년)의 봄(春)이라는 뜻인 '공화춘'으로 개명했다. 1984년 문을 닫았으며, 당시 사용되던 건물은 2012년 '짜장면 박물관'으로 개편되었다. <등록문화재 제246호> Read more.
群山新興洞にいるこの日本式家屋は日本占領期に群山永和洞で布売りであった日本人の広津継伊三郞が建てた家屋です。広津は大地主の多かった群山では稀に商売で富を築き上げ、臨陂辺りで小さい農場を経営しながら、府協議会の議員を勤めていた人物です。この家屋は日本式住宅の特性がよく保全されています。現在この家屋は国家登録文化財第183号に指定されています。 Read more.
일제강점기 군산이 최고로 무역 호황을 누리던 시기인 1926년 10월에 개통된 터널로써 옛 군산시청 앞 도로인 중앙로와 수산업의 중심지인 해망동을 연결하고자 만들어진 반원형의 터널입니다. 2005년 6월 18일 등록문화재 제18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Read more.
옛 벨기에 영사관 건물로 착공년도는 1903년이고 준공년도는 1905년으로 되어 있다. 건물의 규모는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1,500.83㎡이었다. 건설공사는 모두 일본인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는데, 러일전쟁으로 공사기간이 조금 길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982년 관악구로 이전해 지금 2004년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본관을 개관하였다. Read more.
舊 서울驛舍는 1922년 6월 착공, 1925년 9월 준공된 지하 1층, 지상 2층, 면적 6,631㎡ 규모의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로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적벽돌과 화강암 외장재 사용해 지어졌습니다. 설계자는 한국은행 본점과 도쿄역을 설계한 다쓰노 긴고(辰野金吾)의 제자, 츠카모토 야스시(塚本靖)이며,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8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Read more.